[PEF 썰전]PE는 바이사이드가 아니다?

입력 2024-01-31 13:30  

이 기사는 01월 31일 13: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저는 IB, 컨설팅, 회계법인 등 다른 업종에 종사하다가 우리 회사로 입사를 희망하는 지원자들을 면접할 때마다 왜 PE로 이직하려 하느냐고 물어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많은 지원자들이 “바이사이드(Buy Side)로 이직하고 싶어서”라고 답을 합니다. 그럼 저는 왜 바이사이드로 이직하고 싶냐고 되물어 봅니다. 셀사이드의 어떤 점이 마음이 들지 않는지도 같이 물어보죠.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투자자가 되고 싶어서…”,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일하고 싶어서…”, “나의 자문의 결과가 실제로 어떻게 실행이 되는지를 보고 싶어서…”, “옆에서 자문만 하기 보다는 직접 의사결정을 하고 싶어서…”와 같은 대답들을 합니다. 다들 교과서에 나올법한 모범 답안들입니다. 틀리지는 않지만 틀에 박힌 대답이죠. 그런 대답을 들으면 저는 “의사결정을 하고 싶어서 바이사이드로 이직을 원하는 것이 정말 당신의 진심이냐?”, 당신이 생각하는 바이사이드라는 말의 정의가 무엇이냐?”, ”PE가 진짜 바이사이드라고 생각하냐?“고 다시 되물어 봅니다.
셀사이드(Sell Side) vs. 바이사이드(Buy Side)
기업금융 세계에서 셀사이드와 바이사이드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대부분의 독자들도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 셀사이드는 돈과 자금이 필요해서 주식을 발행하거나 지분을 매각하는 기업/기관들과 그들을 클라이언트로 자문해주는 역할을 말합니다. 바이사이드는 반대로 자금을 운용하고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고자 하는 투자자들과 그들을 자문하는 역할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M&A 거래에 있어서는 매도인과 그 자문기관들이 셀사이드이고 반대로 매수인과 그 자문기관들을 바이사이드가 됩니다.

위의 사전적 의미로 PE는 바이사이드가 맞습니다. PE업의 본질이 기관투자자나 거액자산가들의 자금의 위탁받아 운용하고 그 댓가로 운용 수수료와 투자수익의 일부를 수취하는 사업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커리어와 이직을 논함에 있어서 셀사이드와 바이사이드라는 말을 할 때는 앞서 말한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세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셀사이드는 일을 더 빡세게 해야하고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그만큼 급여수준이 더 높은 곳이고, 반대로 바이사이드는 셀사이드에 비해서는 급여수준을 희생해야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더 좋고 스트레스가 더 적은 곳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내포합니다. 속된 말로 셀사이드라는 말은 “을”, 바이사이드라는 말은 “갑”이라는 의미로 쓰여집니다. 사전적 의미와 세속적 의미가 다른 일례로 IB나 컨설팅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PE나 M&A 바이어측 클라이언트 자문을, 즉 사전적 의미의 바이사이드 일을, 빈번하게 하지만 스스로를 바이사이드라고 하지 않고 셀사이드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본인이 셀사이드에 종사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과 얘기를 해보면 클라이언트로부터의 스트레스와 격무에 대한 회의감에 시달릴때마다 바이사이드로의 이직을 꿈꾸지만 막상 단기적인 급여 삭감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에 가로막혀 셀사이드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사이드를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처럼 여기고 지금은 현실적인 이유로 가지 못하지만 조금만 더 고생하면서 경력을 쌓고 돈을 더 번 다음에 언젠가는 용기를 내서 바이사이드로 가리라 다짐하기도 합니다.
PE는 바이사이드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PE는 소위 셀사이드쪽에서 꿈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제대로 일을 한다는 PE사의 직원이라면 자문사에 비하여 라이프스타일이 절대 더 좋지 않습니다. 업무 스트레스도 자문사들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문사 업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는 것은 저도 경험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과 성격이 다를 뿐 PE에서 스트레스 레벨은 어떤 면에서는 자문사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문사에서의 스트레스가 날카롭고 단기적인 느낌이라면 PE에서의 스트레스는 아주 묵직하게 오래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최종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범위면에서는 PE 업무가 자문사 업무를 압도합니다.

그리고 PE는 절대 “갑”이 아닙니다. PE GP사업의 밸류체인은 펀드레이징-투자-모니터링- 엑시트(Exit) 싸이클을 계속 반복하는 것인데요. 이 업무들 중 어느 하나에서도 PE가 갑 행세를 할 수 있는 구석이 없습니다.

펀드레이징은 영업입니다. 저는 IB와 컨설팅 두 분야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다양한 영업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펀드레이징 영업이 IB와 컨설팅 영업보다 더 힘들고 고단합니다. 특히 아직 가시적인 트랙레코드가 변변치 않은 GP의 펀드레이징은 거의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펀딩이 되고나서 투자 활동을 할 때는 PE가 갑이 될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투자처 발굴을 위한 딜소싱, 특히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단독 딜소싱 작업은 제가 경험한 모든 영업과 마케팅들 중에서 난이도가 단연코 최고입니다. 우리가 돈을 가지고 있고 당신들은 돈이 필요하니 우리가 바이사이드이고 우리가 갑이라는 생각으로는 임해서는 절대로 좋은 딜을 소싱할 수가 없습니다.

투자한 이후에 PE가 회사의 대주주가 되면 갑이 되는 걸까요? 역시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저희끼리 농담으로 “투자한 사람이 죄인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PE가” 적어도 투자회사 경영진들이나 직원들에게는 갑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경영진들이나 직원들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PE와 합이 맞지 않으면 퇴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그만입니다.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의 경우는 더구나 이직이 쉽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퇴사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나중에 별반 책임을 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핵심인력의 퇴사로 인하여 회사가 어려워지면 GP인 PE는 그 결과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기업에 비하여 인재풀이 매우 제한적인 중견기업에서는 PE가 회사의 인재들을 오히려 갑으로 모셔야 합니다. 한정된 인재들을 잘 동기부여해서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투자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가끔 PE사 직원들이 실적을 더 내기 위하여 경영진을 심하게 몰아부치거나 과도한 압박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갈 곳이 없는 능력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남겠지만 인재들은 미련없이 회사를 떠납니다. 정작 주주인 PE는 엑시트 할 때까지는 어떤 경우에라도 책임을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떠날 수가 없지만요.

엑시트 상황에서 PE는 사전적 의미를 포함한 그 어떤 잣대로 보나 그냥 셀사이드입니다. 잠재 매수자들을 잘 설득해서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엑시트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이죠.

위에서 설명했듯이 사전적 의미에서는 PE가 바이사이드이지만 "바이사이드 = 갑"이라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PE는 바이사이드가 아닙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PE가 바이사이드처럼 일을 하는거야 말릴 수 없지만 그런 자세로는 지금 같이 경쟁이 치열한 PE시장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국내 PE시장 초창기인 10-15년 전에는 고위공무원 출신들이나 큰 금융기관 CEO출신들이 많이 PE로 영입 되었습니다. 정관계의 기라성 같은 분들이 앞다투어 PE를 설립하거나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10수년이 지난 후인 지금 돌아보면 그런 분들 중에서 성공적으로 PE업계에 자리잡은 사례가 거의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분들이 PE업의 본질은 바이사이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시고 이 업계에 발을 디딘 것이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갑은 을처럼 일하고 을은 갑처럼 생각하라
제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들었던 얘기였는지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생각입니다.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을처럼 헝그리하게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고, 거꾸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클라이언트나 주주의 입장에서 갑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PE에서 성공하려면 갑처럼 생각하고 을처럼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바이사이드를 꿈꾸면서 PE로 이직한 경력 직원들 중 상당수가 그와는 반대로 을처럼 생각하고 갑처럼 일하려고 합니다. 생각은 여전히 을이었던 어드바이저 시절과 달라지지 않고 나중에 책임지거나 혼나는 것이 두려워 의사결정이나 판단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면서, 또 힘든 업무들은 이제 갑이 되었으니 최대한 자문사들에게 아웃소싱 하려고 합니다. PE가 바이사이드라고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죠.

PE로 이직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글을 읽고 나면 아마도 내가 왜 PE로 이직해야 하느냐고 물을 것 같습니다. ”업무 강도가 약한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가 적은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갑 행세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을처럼 일해야 한다는데 도대체 왜?“라고 생각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야심 있고 능력 있는 프로페셔널들에게 PE로 이직을 고민해보라고 적극 권합니다. 왜냐하면 잘해서 성공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셀사이드보다 훨씬 더 큰 재무적인 업사이드와 길고 안정적인 커리어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PE에서 성공의 전제조건은 내가 갑처럼 생각하고 을처럼 일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인드셋은 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으면서 일은 갑처럼 하기 위하여 PE로의 이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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